치유자 식물, 식물과의 관계, 식물을 통한 치유, 바라봄을 통한 차원을 뛰어넘는 방법
우리가 자연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치유를 경험한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단순히 올라가는 과정에 근육에 부가되는 부하로 인한 근육의 운동 정도로 산을 오르는 효과를 정의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이라면 산에 올라 소나무의 거친 껍질에 손을 올려놓고 인사한 다음,
눈을 감고 소나무를 느끼며 호흡해보라.
그 순간 가슴의 답답함은 사라지고 어느 정도의 통증도 사라지면서 저절로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오를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신발을 벗고 낙엽에 덮힌 땅을 맨발로 밟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지구가 따뜻하며 포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의학에서 식물과 광물, 즉 자연물질을 이야기할 때 기운으로 이야기하고, 서양에서는 물을 H2O로 표현하듯 화학식과 영양학적 관점으로 식물을 바라보며 땅에서 나오는 유기체의 조합 정도로 바라보곤 한다.
그런데 뒷산이든, 어떤 산이든, 혹은 동산을 매일 같이 올라보라.
그 산은 어느덧 자신의 마음 안에 들어와 자연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앎 속에서 다시 우리 삶을 바라보면 심지어 인위적이라 여기는 것들 조차도 사실은 자연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고, 식사 중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음식이란 사실 이들의 희생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감사함이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식물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음양이라는 기로만 이해해서도 안되고, 영양학적으로 이해해도 불충분하며, 정, 기, 신 중 신, 즉 마음의 요소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식물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는 그 어떤 약물을 복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자신의 몸이 치유되어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동양의 음양오행, 불교의 지수화풍공, 현대의 양자역학 등도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 알아야 할 사물의 실체를 알려줄 뿐, 그 자체로서 본질이 아니다.
관계, 양자역학, 공, 태극과 무극, 음양오행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우리의 본질이란, 불이라는 본질적 법칙 아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될 뿐이다.
이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좌뇌와 우뇌 2가지로 나뉜(음양) 머리로 현상계를 이해하지만, 이러한 조화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하나로 존재하는 심장이며, 이것과 하나되는 것은 음양이 만나 무극을 이루는 단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하나되고자 할 때는 머리로도 이해하지만, 우선되어야 할 것은 심장을 통해 있는 그대로 공감하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I see you"라는 표현처럼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단순히 현상계를 이루는 유기체적 조합물로 바라봄이 아닌, 그 본질을 꿰뚫어 바라보는 심안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우주의 본질을 경험하게 되며 사물의 진정한 쓰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식물로부터 치유를 바란다면, 우리는 식물을 그러한 본질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감사함을 가지고 접근함이 필요하다.
그러한 관점의 차이가 본질적 차이를 빚어내게 되며, 차원을 뛰어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