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Words of my perfect teacher

2019. 9. 21. 23:33

우리의 부모님 아니었던 유정이 단 하나도 없다. 그들이 우리의 부모님이었을 땐, 오로지 우리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일에만 신경쓰시며 보살펴 아껴주셨다. 우리에게 오로지 친절만을 베푸셨던 부모님들 또한 행복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열 가지 긍정적인 행위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 중 누구도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으나 어떻게 열 가지 부정적 행위를 그만둘 수 있는 지를 모른다. 그들의 가장 깊은 욕망과 행위는 모순적이다. 불쌍하고 가련하며 혼란스러우며 마치 길을 잃은 장님과 같구나!

 

자신에게 말하라:

 

"내가 수행하고자 함은 오로지 나의 부모님이셨던 유정들을 이끌어 존재의 육도윤회에서 건져내어 전지한 부처의 차원으로 이끌어가고자 수승한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리라! 그들을 모든 업의 작용과 습관과 육도의 고통속에서 자유케하리라!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코자 할 때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하든 간에, 그 행위가 미래에 좋은 원인이 되도록 보리심을 일으켜라.

행위를 할 때에 어떤 개념화에도 빠지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환경에 의해 그 축복이 무너질 수 있다.

마지막에 좋은일에 헌정하므로서 행위를 봉하라. 이것으로서 그 행위는 날로 장대해질 것이다.

 

불법을 어떻게 듣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듣고자 하는 의도이다.

 

무엇이 한 행위를 좋거나 나쁘게 하는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가나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가 아니라

어떠한 의도가 그 뒤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의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의 태도가 청정해졌을 때 그러한 빛을 행위에 스며들게 하며 이로써 위대한 존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태도를 고치지 못한다면 불법을 배우는 듯하나, 물질적인 행위의 집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거나 수행을 할 때에는 신성을 명상하고 만트라를 외는 등으로 하여 보리심을 키워야 한다.

 

 

자신이 있는 장소와 스승을 고려하지 말라.

 

이미 완전한 장소, 스승을 앞에 두고 있다고 여기며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화는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모든 부처의 정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몸이 성지이고 그의 말이 불법이고 그의 마음이 부처인 것이다.